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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기사 전문 – https://jmagazine.joins.com/forbes/view/327298
손욱의 對話(3) 김동수 바른경제동인회 이사장
“반기업정서 탓하기 전에 신뢰부터 쌓아라”
손욱의 대화 세 번째 순서에서 만난 김동수 바른경제동인회 이사장은 이 같은 반기업정서의 확산에 대해 “기업이 사회로부터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김 이사장은 한국 기업이 지속가능한 경영을 실현하기 위해선 투명경영을 뛰어넘어 반드시 존경받는 기업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 이사장은 이미 1980년대에 한국펩시콜라 대표이사를 역임하며 글로벌스탠더드를 경험했고 이를 바탕으로 지난 2006년부터 바른경제동인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현재 외국계 컨설팅사인 그라비타스 파트너십 코리아 대표로도 재임 중이다.
김동수: 부의 세습 때문이죠. 창업주 이후 4~5세까지 내려가면서 새로운 귀족이 된 겁니다. 바른경제동인회 회장이신 박종규 KSS해운 전 회장은 이미 26년 전에 “회사를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했어요. 왜일까요? IMF 외환위기 때 어려움을 겪었는데, 직원들의 헌신으로 회사가 살아났다고 합니다. 그때 “이 회사는 내 것이 아닌 직원들의 것”이라는 인식이 확실히 자리 잡았다고 해요. 가장 뛰어난 경영인은 기업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는 사람입니다. 경영 능력에 대해 어떤 증명도 해내지 못한 사람을 단순히 자식이란 이유만으로 후계자로 점찍는 것처럼 위험한 일이 있을까요.
손욱: 이럴 때일수록 과거 세종대왕의 리더십이 떠오릅니다. 선대 왕들이 권력 유지에만 힘을 쏟을 때 세종은 백성이 행복한 나라를 화두로 삼았어요. 기업인들도 사업의 유지뿐 아니라, 책임 있는 사회 성원으로서 제 몫을 해야 할 때입니다.
김동수: 오너가 이익 확대에만 몰두하다 보면 직원을 단순히 종업원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심지어 종처럼 여기는 경우도 있어요. 재벌들의 인식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 대기업은 산업화 과정에서 정부의 정책적 지원으로 커왔어요. 그들이 잘나서가 아닙니다. 한국 사회가 키워온 공동체적 자산이 바로 재벌이죠. 하지만 언제부턴가 한국 대기업은 국가가 기회를 주었기 때문에 성장했다는 사실을 잊은 것 같아요. 사세 확장에만 재미를 둘 뿐, 사람을 중시하지 않죠.
손욱: 말씀을 듣다 보니 한국에서 반기업 정서가 왜 갈수록 거세지는지 이해됩니다. 경영과 기업을 바라보는 CEO의 인식 개선이 우선돼야 할 텐데요.
김동수: 직원들을 비즈니스 도구로만 보지 말고 같이 사는 존재로 생각해야 합니다. 대기업은 이제 투명경영 시스템은 어느 정도 갖췄어요. 이제는 스스로 존경받을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모든 밸류는 인간의 신뢰에서 나와요. 재벌들은 권력이 아닌 사람을 신뢰해야 합니다. 요즘은 우리 기업의 투자도 조 단위로 움직입니다. 해외 자본의 투자 규모도 갈수록 커지고 있죠. 기업에 대한 신뢰가 더욱 중요해진 이유입니다. 깨끗하고 투명하면 내자든 외자든 모이게 돼 있어요.
손욱: 직원에 대한 신뢰를 강조하시는데, 이를 실현할 구체적인 방법이 있을까요?
김동수: 저와 바른경제동인회에서 꾸준히 주장해온 것이 직원들에 대한 이익배당, 즉 이익공유제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해진 연봉이면 됐지 뭘 더 주느냐”고 볼멘소리를 하는 분이 많아요. 이익배당은 말 그대로 결산 이후 예상 외 이익이 났을 때, 이를 직원들과 공유한다는 뜻입니다. 이익이 나면 배당을 받고, 반대로 손실을 보면 안 받는 구조죠. 지금의 상여금 시스템에 따르면 손실이 나더라도 임단협에서 정한 금액을 무조건 지급해야 합니다. 반대로 이익이 커져도 받는 돈은 똑같아요. 또 결산이 끝난 후 이뤄지는 상여금은 경비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이를 직원배당으로 돌리면 회사 입장에선 성과급에 대한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어요. 경비로 인정받으니 법인세가 줄어드는 효과도 있죠. 우리는 아직 주주가 아니면 배당을 받지 못한다는 고정관념에 머물러 있어요.
기업 신뢰 쌓이면 노사문제도 해결
손욱: 직원들 입장에선 상여금이 줄어들 수 있다는 불안감이 생기지 않을까요?
김동수: 직원배당이 정착되면 당장 눈앞에 드러나는 변화가 있습니다. 첫째 사고율이 현격히 떨어집니다. 사고가 없어야 수익이 나고, 수익이 커져야 배당을 더 많이 받기 때문이죠. 그다음 낭비가 사라집니다. 직원들이 스스로 회삿돈을 아껴 쓰는 거죠. 비용을 줄여야 수익이 느니까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불황에는 배당도 줄게 돼 있습니다. 대신 사람을 내치는 구조조정은 없어요. 나가는 돈을 줄이면 되니까요. 회사 입장에선 투명한 재무와 직원들의 능률 향상을, 직원들 입장에선 이익을 공유하면서도 고용안정까지 확보하게 돼요. 이게 바로 신뢰입니다.
손욱: 40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고도성장을 하다 보니 기업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할 여유도 없이 달려왔던 것 같습니다.
김동수: 기업과 직원 간 신뢰가 단단하면 그 어렵다는 노사문제도 쉽게 정리되게 마련입니다. 한국펩시콜라 대표 시절 경험한 구조조정이 좋은 예죠. 한국 기업은 구조조정이라면 먼저 부서부터 쳐냅니다. 사람을 자르는 데 초점을 두는 거죠. 펩시는 달랐어요. 토론부터 시작하더군요. “앞으로 이렇게 가려는데, 프로세스를 어떻게 조정할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당시 펩시는 미국 전역에 100여 개에 달하던 부품 보관소를 통폐합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어요. 중부지역에 하나의 부품센터를 만들고, 전국의 각 생산공장이 부품을 요청하면 페덱스로 보내자고 결론 내렸죠. 이 과정에서 감원한 인원이 200~300명이었는데, 모두 재교육과 훈련을 통해 이직을 도왔습니다. 최선의 프로세스를 찾고 실천에 옮기는 것이 펩시의 바로 구조조정입니다. 반대로 생산성이 오르면 남은 직원들의 보상도 늘렸죠. 우리는 어떤가요? 사람은 줄고, 일은 늘고, 봉급은 그대로죠.
손욱: 앞서가는 글로벌 기업은 역시 문화가 기본이더군요. 우리 기업인들도 신뢰를 바탕으로 한 기업 생태계 조성이 얼마나 절실한지 최근에야 비로소 깨닫기 시작한 것 같아요.
김동수: 우리 기업들은 아직 역사적 사명이나 사회적 책임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어요. 정책적 지원으로 커왔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하고 있죠. 일종의 직무 유기라고 봅니다. 어른이 어른답지 못하니 존경받지 못하는 거죠. 덩치는 커졌지만 정신은 여전히 창업자 수준에 머문 경우가 많아요. 한국펩시 대표 때 글로벌 회장이 방문한 적이 있어요. “요즘 바쁘냐”고 묻더군요. 우리 정서상 당연히 바쁘다고 답했죠. 그랬더니 “당신은 바쁘면 안 된다”며 “바쁘면 생각을 못 한다”는 겁니다. “바쁜 건 아랫사람들이 맡고, 당신이 할 일은 생각”이라면서요. 1985년의 일인데, 우리 기업인들도 그 정도 수준에 올라서야 합니다. 멀쩡한 사람이 왜 국회만 가면 바보가 될까요. 생각할 틈도 없이 바쁘기 때문입니다.